넷플릭스가 독점 공개한 ‘나이브스 아웃: 글래스 어니언(Glass Onion: A Knives Out Mystery, 2022)’은 전작 ‘나이브스 아웃’(2019)의 뒤를 잇는 두 번째 작품으로, 고전 추리의 묘미와 현대적 풍자가 결합된 미스터리 시리즈다. 이 두 편의 공통점은 탐정 브누아 블랑(다니엘 크레이그)의 활약이지만, 전개 방식과 캐릭터 구성은 전혀 다르다. 특히 두 영화는 각각 가족 내 분열과 현대 셀럽 문화의 허상이라는 주제를 배경으로, 전혀 다른 인물 구도를 펼쳐 보인다. 이번 글에서는 두 작품의 캐릭터 구조를 비교하며, 인간 군상과 메시지가 어떻게 변주되는지를 살펴본다.
다른 무대, 다른 사건, 다른 사람들
‘나이브스 아웃’은 뉴잉글랜드 지역의 고풍스러운 저택에서 벌어진 추리소설 작가의 죽음을 둘러싼 가족 간의 암투를 그린다. 유산 상속을 둘러싼 이기심과 위선, 가식이 전면에 드러나며, 탐정 블랑은 간병인 마르타(아나 디 아르마스)와 함께 사건의 진실을 추적한다.
반면 ‘글래스 어니언’은 햇살 가득한 그리스의 개인 섬에서 진행된다. 억만장자 마일스 브론(에드워드 노튼)이 초대한 셀럽 친구들과 함께 벌어지는 살인 추리 게임이 실제 사건으로 변하며 블랑이 개입하게 된다. 이 작품은 테크 산업, 정치, SNS 등 현대 사회의 부조리와 허영을 비판하는 메시지를 담는다.
두 영화 모두 살인을 중심으로 진행되지만, 캐릭터 구성과 갈등 구조는 극과 극이다. 전작이 ‘가족’이라는 폐쇄적 공동체 안의 분열과 배신을 그렸다면, 후속작은 ‘가짜 성공’으로 포장된 현대인들의 욕망을 해체한다.
가족의 얼굴 vs 셀럽의 가면
1. 공통된 중심축 – 탐정 브누아 블랑
두 영화 모두에서 블랑은 진실을 추적하는 핵심 인물이다. 하지만 그 역할의 방식에는 차이가 있다.
- 1편(나이브스 아웃)에서는 조용히 주변을 관찰하며 수수께끼처럼 행동하다가 후반부에 진실을 밝히는 형식.
- 2편(글래스 어니언)에서는 시작부터 강한 존재감을 드러내며, 수사 전체를 이끌어간다.
블랑은 전통적인 탐정 캐릭터와 다르게, 감정적 공감 능력과 유머 감각이 뛰어난 ‘현대적 명탐정’이다.
2. 용의자 집단 – 내부 분열 vs 외부 허영
- ‘나이브스 아웃’: 한 지붕 아래 모인 전통적 백인 가족 구성원들이 주요 용의자다. 그들은 겉으로는 화목해 보이지만, 유산을 둘러싼 갈등이 격화되며 서로를 비난하고 의심한다.
- ‘글래스 어니언’: 억만장자 마일스의 친구라는 이유로 모인 셀럽 집단이다. SNS 인플루언서, 정치인, CEO, 과학자 등 각기 다른 분야의 ‘성공한 인물’들이지만, 실상은 마일스의 후광에 기생한 가짜 성공자들이다.
3. 조력자 캐릭터 – 마르타 vs 헬렌
- 마르타: 진실한 심성과 인간적 도덕성을 상징하는 인물. 불법체류자의 딸로, 권력에서 소외된 존재이지만, 결국 유일한 ‘진실한 사람’으로 부상한다.
- 헬렌: 쌍둥이 언니 앤디의 죽음을 밝히기 위해 블랑과 함께 사건에 뛰어든 인물. 전작의 마르타보다 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조력자로, 블랑과 대등한 추리 파트너를 이룬다.
위선과 계급 vs 허영과 이미지
‘나이브스 아웃’은 고전적인 미스터리 영화이면서도, 현대 미국 사회의 계급 갈등, 인종 편견, 도덕적 위선을 풍자한다. 특히 마르타가 ‘외부인’으로 시작해 결국 모든 유산을 물려받는 결말은, 권력을 잡고 있던 세대가 도덕적 패배를 인정하는 장면으로 읽힌다.
‘글래스 어니언’은 인플루언서, 테크 기업 CEO, 정치인 등 현대 사회에서 ‘성공한 사람들’로 포장된 인물들의 공허한 실체를 파헤친다. 마일스는 모든 것을 가진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자신의 아이디어도, 친구도, 인간성도 잃어버린 인물이다. 이 영화는 "진짜 천재는 누구인가?", "우리는 겉만 보고 판단하지 않는가?"라는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두 영화 모두 “누가 죄인인가?”라는 질문보다 “누가 진실을 외면하고 있는가?”에 집중한다. 결국 캐릭터가 범죄를 저지르는 과정이 아니라, 왜 그 범죄를 감추려 했는가를 통해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한다.
캐릭터가 다른 만큼, 메시지도 확장된 시리즈
‘나이브스 아웃’ 시리즈는 캐릭터의 힘으로 서사를 구축한다. 같은 탐정, 같은 미스터리 장르라도, 사건의 구조와 인물들의 동기, 성격이 다르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된다.
- 1편은 폐쇄적 가족 구조 속 탐욕과 위선을 파헤쳤고,
- 2편은 현대 사회가 만들어낸 가짜 성공과 셀럽 문화의 허상을 조명했다.
각 편에서 등장하는 캐릭터는 단순한 용의자가 아니라, 사회적 구조를 반영한 상징적 존재다. 그리고 탐정 블랑은 그런 사회적 진실을 꿰뚫어보는 안내자다.
넷플릭스를 통해 두 작품 모두 감상할 수 있는 지금, 캐릭터를 중심으로 두 작품을 비교 감상해 보면, 이 시리즈가 단순한 추리물이 아닌, 현대 사회 비판적 시네마로서의 역할도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