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개봉한 영화 ‘헌트(Hunt)’는 배우 이정재의 감독 데뷔작이자,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에 공개된 한국형 첩보 액션 스릴러다. ‘오징어 게임’으로 세계적 인기를 얻은 이정재는 이 작품을 통해 배우를 넘어 연출자로서의 역량을 선보이며 또 다른 행보를 시작했다. 냉전기 한국의 정치·사회적 혼란 속에서 국가안전기획부 요원들이 펼치는 음모와 배신, 충격적 진실은 숨 쉴 틈 없이 몰아치며 관객을 몰입시킨다.
내부 첩자, 그를 잡기 위한 두 남자의 게임
1980년대, 군사정권 하의 혼란스러운 한국 사회. 국가안전기획부 요원 박평호(이정재)와 김정도(정우성)는 각각 해외팀과 국내팀을 이끄는 간부로, 서로 신뢰하지 못하는 관계 속에 함께 일한다. 어느 날, 안기부 내부에 북한 간첩이 침투해 있다는 정보가 입수되고, 두 팀은 서로를 감시하며 진실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박평호는 김정도를 의심하고, 김정도 역시 박평호가 뭔가 숨기고 있다고 믿는다. 이들의 갈등은 개인적인 감정과 정치적 입장 차이까지 겹쳐지며 점차 격화된다. 이 와중에 대통령 암살 시도 정보가 포착되며 상황은 긴박해지고, 첩자를 색출하려는 작전은 더욱 치열해진다.
영화 후반부, 관객은 놀라운 반전에 직면하게 된다. 내부 첩자의 정체가 밝혀지는 순간, 단순한 스파이 찾기가 아닌, 이념과 신념, 개인의 정의가 충돌하는 깊은 갈등이 중심이 되었음을 깨닫게 된다. ‘누가 적인가?’보다 더 복잡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첩보 액션과 정치 드라마의 밀도 높은 융합
‘헌트’는 첩보 액션의 전형적 재미에 한국 정치사와 이념 갈등이라는 사실적 배경을 결합한다. 이 영화의 첫 번째 관전 포인트는 밀도 높은 서사와 빠른 전개다. 초반부터 쉴 틈 없이 이어지는 감시, 도청, 고문, 추격전은 한순간도 눈을 떼기 어렵게 만든다.
두 번째는 박평호와 김정도의 심리전이다. 두 사람 모두 정의와 충성 사이에서 고민하고, 진실을 찾기 위해 서로를 감시한다. 이정재와 정우성이라는 두 배우의 팽팽한 연기 대결은 영화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다.
세 번째는 시대 재현과 연출력이다. 1980년대 한국의 사회 분위기, 정권의 불안, 언론 탄압, 시위 진압 등의 요소가 영화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이정재 감독은 긴장감 넘치는 연출로 데뷔작임에도 불구하고 노련한 감각을 선보였다.
이정재의 감독 데뷔! 연기에서 연출로, 한국영화의 확장
‘헌트’는 단순한 배우 출신 감독의 시도가 아니다. 이정재는 약 4년간 시나리오를 직접 집필하고, 캐스팅부터 편집까지 전 과정에 깊이 관여했다. 그는 첩보물이라는 장르에 인물 중심의 서사와 심리적 갈등을 강조하며, 전통적인 한국 액션과는 다른 색을 만들어냈다.
그가 배우로서 쌓아온 감정선과 캐릭터 구축 능력은 감독으로서도 잘 발휘되었다. 특히 주요 인물들의 과거 트라우마, 국가에 대한 충성심, 인간적인 약함까지도 세심하게 그려냈다. ‘헌트’는 정치·사회적 이야기와 인간 드라마의 결합이라는 점에서 한국영화의 한 단계 성장을 보여준다.
또한, ‘오징어 게임’으로 글로벌 팬층을 확보한 이정재가 직접 연출과 연기를 모두 소화하며, 넷플릭스를 통해 해외 관객에게도 한국의 정치 역사와 첩보 장르의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
이정재의 또 다른 시작, ‘헌트’가 남긴 것
‘헌트’는 단순한 첩보물이 아니다. 시대의 혼란 속에서 자신의 신념과 진실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다. 한국 근현대사의 어두운 단면을 배경으로, 국가라는 이름 아래 벌어지는 감시와 조작, 그리고 개인의 선택을 그려낸 이 작품은 액션 그 이상의 깊은 주제를 담고 있다.
이정재는 이 영화를 통해 ‘오징어 게임’의 승세를 연출자로까지 확장시켰고, ‘헌트’는 그 첫 출발점으로 손색이 없다. 몰입감 있는 전개, 반전 있는 서사, 강렬한 연기, 정치적 메시지까지 담긴 이 작품은 넷플릭스에서 꼭 봐야 할 한국 영화 중 하나로 추천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