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넷플릭스가 선보인 오리지널 영화 ‘더 키친(The Kitchen)’은 흑인 배우이자 영화 제작자인 다니엘 칼루야가 각본과 공동 연출을 맡은 작품으로, 런던의 암울한 미래를 배경으로 한 디스토피아 휴먼 드라마다. 기술은 발전했지만 인간관계는 단절되고, 복지마저 사라진 사회에서 탄생한 ‘더 키친’이라는 무허가 공동체 속 두 인물의 관계를 따라가며, 사회적 메시지와 감정적 울림을 동시에 전달한다.
공동체에서 시작된 새로운 가족
영화는 가까운 미래의 런던을 배경으로 한다. 기술과 도시 인프라는 눈부시게 발전했지만, 그만큼 빈부격차도 극단적으로 심화되었고, 가난한 사람들은 더 이상 집을 소유할 수 없는 시대가 된다. 국가의 복지 시스템은 붕괴되고, 사회는 철저히 ‘소유자’와 ‘비소유자’로 나뉜다.
이 영화의 무대가 되는 ‘더 키친’은 그 비소유자들이 모여 사는 거대한 비공식 슬럼 공동체다. 경찰과 정부의 보호 없이 스스로를 지키며 살아가는 이 곳은 불법으로 간주되지만, 그 속에는 서로를 돕는 자생적인 공동체 정신이 살아있다.
주인공 이지(케인 로빈슨)는 더 키친에서 살고 있는 조용한 남성으로, 과거를 알 수 없는 인물이다. 그러던 어느 날, 12살 소년 벤지(제드 조셉)가 그의 인생에 등장한다. 벤지는 최근 어머니를 잃고 고아가 되었으며, 더 키친을 떠나겠다고 결심하지만 어쩌다 이지와 함께 지내게 된다.
처음엔 서로에게 마음을 열지 않던 두 사람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가까워지고, 이지는 점차 벤지의 보호자가 되어간다. 이 영화는 단순히 디스토피아 세계를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부서진 사회 속에서 어떻게 인간다움을 지킬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SF적 배경 속 현실적 감정
‘더 키친’은 디스토피아 장르임에도 불구하고, 거대 서사보다는 개인의 감정에 집중하는 작품이다. 화려한 CG나 액션보다는 삶의 디테일, 감정의 호흡, 사회적 현실이 강조된다.
가장 강한 관전 포인트는 이지와 벤지의 관계다. 서로 전혀 다르고, 사회적으로도 소외된 두 인물이 점차 서로를 이해하고, 무언의 유대를 형성해가는 과정은 매우 섬세하게 그려진다. 특히 벤지 역할을 맡은 아역 배우 제드 조셉의 눈빛과 감정 연기는 큰 호평을 받았다.
비주얼도 빼놓을 수 없다. 더 키친은 무허가 슬럼이지만, 그 안의 그래피티, 형광 조명, 로컬 음악 등은 오히려 다채롭고 생동감 넘치는 공간으로 연출된다. 감독은 ‘가난’과 ‘저항’을 단순히 어둡게만 표현하지 않고, 그 안에서도 피어나는 창조성과 공동체성을 시각적으로 표현한다.
또한 영화는 마치 다큐멘터리 같은 현실감을 주며, '이런 미래가 멀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불편한 메시지를 건넨다.
감독의 메시지와 결말 해석
‘더 키친’은 다니엘 칼루야와 킴베르리 니콜스의 공동 연출작으로, 단순한 미래 SF가 아닌 사회 구조의 붕괴 속 인간성 회복을 이야기한다. 칼루야는 인터뷰에서 “더 키친은 현실과 닮은 미래이자, 지금 우리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거울”이라고 말했다.
결말에 이지와 벤지는 각자의 선택을 하게 된다. 외부의 위협, 강제 철거, 이웃들의 갈등 속에서 두 사람은 더 키친에서 살아남기 위해 협력하고, 결국 서로를 진정한 가족으로 받아들인다. 이 결말은 화려하지도, 극적이지도 않지만, 영화 전체의 메시지를 가장 강하게 보여준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아도, 함께 살아가는 것이 가족이다."
가장 가까운 미래, 인간다움을 묻다
‘더 키친’은 지금까지의 SF 영화처럼 기술 중심이 아닌, 감정 중심의 디스토피아 드라마다. 빠른 전개나 액션은 없지만, 그보다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사람답게 산다는 건 무엇인가?”, “사회가 무너졌을 때 우리가 붙잡아야 할 건 무엇인가?”
넷플릭스가 선택한 이 작품은, 비록 작고 조용한 영화일지라도 매우 강한 여운을 남긴다. 가난과 소외, 차별의 문제는 더 이상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며, ‘더 키친’은 그 현실을 예술적으로 반영한다. 감동과 메시지를 동시에 경험하고 싶다면, 이 작품은 강력 추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