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를 아무 생각 없이 켰다. 진짜 아무 생각 없이. 하루를 허무하게 흘려보낸 날에는 오히려 새로운 작품보다 익숙한 이름이 마음을 끈다. ‘부산행’. 이미 여러 번 봤고, 줄거리도 다 기억나는데, 또 본다. 왜일까. 요즘은 좀비보다 사람이 더 무서워진 세상이어서일까. 아니면 내가 지쳐있다는 신호일까. 다시 보는 ‘부산행’은 처음 그날의 공포가 아니라, 지금 내 마음과 묘하게 닮아 있었다. 생존과 이기심, 인간성이라는 단어들이 거창하게 들리던 예전과 달리, 지금은 그게 모두 내가 매일 겪는 감정처럼 느껴졌다. 어쩌면 이 영화는 처음엔 이야기였지만, 지금은 현실이다. 그래서 다시 보게 된다. 넷플릭스 재생 버튼을 누르며, 나는 무언가를 기억하고 싶어졌던 거다. 누군가를 위해 울었던 장면, 나도 몰래 주먹을 쥐었던 순간들. 그 모든 게 나를 이끄는 감정의 조각들처럼 떠올랐다.
영화 부산행 줄거리 요약
석우는 무심한 아버지다. 딸 수안이 뭘 원하는지도 모르고, 알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그런 그가 수안을 데리고 부산행 KTX에 오른다. 말로는 생일 선물, 사실은 죄책감 덩어리. 열차가 출발하고, 우리도 안다. 뭔가 곧 터질 거라는 걸. 그리고 진짜로 터진다. 감염자 하나가 몰래 타고, 눈 깜짝할 새에 지옥이 열차 안에 펼쳐진다. 나는 이 설정이 무서우면서도 너무 현실 같아서 처음 봤을 때도, 지금도 숨이 막혔다. 바깥 세상도 망가져 있고, 안은 고립된 철통 지옥이다. 안팎 어디에도 구원이 없다. 사람들은 점점 괴물이 되고, 남은 사람들은 더 빠르게 본모습을 드러낸다. 누군가는 끝까지 손을 내밀고, 누군가는 문을 닫아버린다. 이 열차는 목적지가 아니라 ‘선택의 레일’ 위에 서 있다. 나는 보면서 자꾸 묻는다. 나는 저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할까. 나도 문을 닫을까, 아니면 누군가를 잡아끌까. 그게 이 영화가 던지는 진짜 질문이다. 좀비는 단지 배경일 뿐이다.
명장면과 등장인물 분석
내가 가장 기억하는 건 상화다. 마동석이 아니라, 그냥 그 사람 ‘상화’. 임산부 아내 옆에서 웃고, 사람들 대신 나서고, 주먹으로 좀비 떼를 막아낸다. 그 장면을 처음 봤을 땐 통쾌했다. 그런데 다시 보니, 그게 그냥 ‘사람이 해야 할 일’이더라. 그래서 더 슬펐다. 그는 무섭고 용감해서 그런 게 아니라, 그럴 수밖에 없어서 나섰다. 나였으면 어떻게 했을까. 망설였을 거다. 석우는 내가 더 익숙한 사람이다. 자기만 알고, 눈치 보고, 계산하며. 하지만 딸 앞에서 점점 부서진다. 그리고 마침내 완전히 무너진다. 그 과정이 너무 아프고 또 너무 사람 같아서, 난 자꾸 눈을 떴다가 감았다. 그리고 수안. 김수안 배우는... 그냥 ‘사람을 믿는 마음’ 그 자체였다. 어른들의 말이 아니라, 표정 하나로 그 모든 걸 반박했다. 울 때, 참을 때, 한숨 쉴 때. 그녀는 이미 어른이었고, 그래서 그 작고 여린 존재가 더 아팠다. 좀비는 달리고, 문은 닫히고, 사람들은 소리 지르는데, 이상하게 가장 무서운 건 그 아이의 조용한 눈빛이었다. 내가 잊고 살던 무언가가 자꾸 거기서 찔렸다.
결말 해석
마지막 장면은 솔직히 다시 못 보겠다. 석우가 감염된 걸 깨닫고, 아이를 안은 채 떠나려 할 때, 나는 이미 감정이 터져버렸다. 그는 아무 말 없이 돌아선다. 수안이 따라 나오지 못하게 문을 닫고, 혼자 남아 걷는다. 말이 없다. 설명도 없다. 그냥 걷는다. 마지막엔 아이 이름을 떠올리며 웃고, 열차 밖으로 몸을 던진다. 그게 아빠라는 존재구나, 싶었다. 세상엔 거창한 영웅은 없지만, 사랑 때문에 무너지고 버텨내는 평범한 사람들은 분명히 있다. 수안과 임산부가 부산에 도착해서 군인 앞에서 노래를 부를 때, 그건 생존 신호가 아니라, 남겨진 이들의 ‘진심’이었다. 희망은 참 잔인하다. 다 사라지고 남은 한 줄기라는 점에서. 그래서 더 아름답고 더 슬프다. 나는 그 장면을 보며 혼자 중얼거렸다. “살아있다는 건, 누군가를 위해 계속 울 수 있는 상태구나.” 영화가 끝나고도 마음이 가라앉지 않았다. 멍하니 앉아서 내 가족, 내 친구, 내가 지키고 싶은 사람들을 떠올렸다. 그 사람들 앞에서 나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나 자신에게 솔직하지 않으면 안 되는 질문이었다.
다시 본다는 건, 처음보다 더 깊게 느끼겠다는 각오다. 넷플릭스에서 ‘부산행’을 재생한 건 단순히 심심해서가 아니었다. 나도 모르게 감정이 고장난 날이었고, 이 영화가 그 감정을 조심스럽게 만져줬다. 세상은 더 복잡해졌고, 우리는 점점 무뎌지고 있다. 그런데 이 영화는, 그 무뎌진 마음을 툭툭 두드린다. 사람을 믿는 일이 얼마나 용기 있는 일인지, 누군가를 지키는 선택이 얼마나 무거운지, 끝까지 인간으로 남는다는 게 얼마나 고독한 싸움인지. ‘부산행’은 그것들을 말없이 꺼내 보여준다. 거대한 좀비물이라는 겉껍질 안에, 너무 작고 따뜻한 이야기들이 숨어 있다. 다시 말하지만, 좀비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그 순간에도 ‘사람’으로 남고 싶었던 누군가의 마음이다. 그리고 그 마음은 지금 이 글을 쓰는 나에게, 다시 한 번 묻는다. “넌 괜찮아? 정말 잘 버티고 있어?” 그 질문에 나는 오늘도 조용히, 대답을 찾는다.